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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기억

별밤

by 센티멘탈 쟈니 2020. 9. 2.

'별밤'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MBC 라디오의 음악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를 떠올릴 것이다. 그 다음엔 아마도 '돈 맥클린'의 자작곡으로 Starry Starry Night ~ 으로 시작하는 팝송 '빈센트'일 것이고. 그런데 나에겐 그것들 보다도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제주도 여행중에 무심코 마주하였던 밤하늘이 그것이다.

70년대의 이종환, 박원웅, 김기덕, 이수만, 그리고 80~90년대의 이문세를 거쳐 현재까지 50년 넘게 방송되고 있는 '별밤'은 그 시그널뮤직이 청소년시절의 나에겐 밤이 깊었음을 알려주는 시그널로 작용하였다. 밖에서 들으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귀가를 재촉하였고, 집에서 들을 땐 '집에 있어 다행이야' 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였었다. 자정의 통금이 있던 시절의 밤10시는 초저녁으로 취급되는 지금과는 사뭇 그 느낌이 달랐다.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

70년대 초에 발표된 '빈센트'는 그저 좋은 노래들 중 하나로 생각하며 무심히 들어오고 있었는데 10여년 전 그림에 노래를 삽입한 PPT 파일을 보고나서야 그 것이 빈센트 반 고호를 노래한 것 임을 알게 되었다. 고호의 여러 그림들과 함께 흔들리는 영혼을 가진 그의 고통을 가사로 잘 표현하였으며 차분한 곡조마저 절박하게 어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필시 돈 맥클린도 고호와 같은 아니면 최소한 그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흔들림이 있는 영혼을 가졌을 것이다.

대학 3학년의 나 역시 내적인 흔들림과 다투며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시간 이었다. 삶의 본질에 대하여 끝없이 이어지는 안으로부터의 질문에 아무런 답이라도 얻어보려 이리저리 기웃대고 있었으나 깨달음을 얻을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았으니 하루하루가 공허한 시간이 될 뿐이었다.

여름 방학이 왔고 세명의 친구들과 제주를 여행 하였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목포로 그리고 거기서 배를 타고 제주로 향했다. 배삯이 저렴한 배는 크지 않았고 빠르지도 않았다. 좋지 않은 날씨에 밤새도록 항해 하다보니 심한 배멀미에 x물 까지 게워낼 정도로 괴로웠다. 차라리 배에서 뛰어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는데 그 고통의 시간을 참아내니 눈 앞에 한라산을 뒷배로한 소박한 제주항이 슬며시 모습을 나타내었다.

제주의 어느 해수욕장에서

제주시 서쪽으로 애월, 한림, 협재를 지나 남쪽의 중문, 서귀포를 거쳐서 중앙의 한라산을 오른후에 동쪽으로 빠져나와 성산 일출봉에 도달하니 일주일 넘게 텐트생활을 한 몸이 재정비 해달라고 보채는 듯 하였고 게다가 비가 세게 내린다는 좋은 핑게가 있어 우리는 모처럼 민박을 찾아 방바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비는 말끔히 개어 있었고 일출봉은 깔끔하게 세수를 끝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일출봉 앞 파아란 오르막 언덕은 '저푸른 초원 우에~'라는 노래 가사가 절로 불려나올 듯 하였으며, 초원 앞으로 둘러쳐진 나무울타리와 같이 어울리니 달력사진으로나 보아았던 서양의 목장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당시 한참 TV방송을 타던 'HT껌~ 부드러운 맛~'으로 시작하는 김세환의 CM송이 나오는 광고를 바로 여기서 찍었기에 우리도 돌아가며 나무 울타리에 걸터 앉아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모습의 김세환을 따라 포즈를 취해 보았다.

김세환 같이 포즈를 잡고

일출봉과 그 절벽 아래의 해변까지 여유있게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니 벌써 어둠이 곁에 와 있었지만 우리는 제주일주 를 계획된 일정 내에 마무리 하기위해 김녕, 함덕 등을 향해 계속 이동하기로 하였다. 성산 어디쯤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가게에서 아이스케키 하나씩을 사서 입에물고 가게 앞 평상에 드러누웠다.

'아~ 좋다~' 하며 편하게 누우니 눈 앞에 까만 하늘과 수없이 많은 별들이 나타났다. '와~~' 하고 감탄을 할 찰나 점점 더 많은 별들이 입체적으로 겹치듯이 별과 별 사이에 새로운 별들이 보이기 시작 했다. '어! 이것이 무었이지? 원래 밤하늘이 이런 것 이었나? 왜 그동안엔 볼 수 없었지?' 하는 생각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도 언제나 밤하늘은 있어왔고 친가나 외가의 시골집에서 보낸 여러번의 방학중에 그곳엔 서울과는 다른 밤하늘이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 성산에서 스물두살의 내가 본 그 밤하늘에선 빛이 1도 없는 암흑의 하늘에서 무한개수의 별들이 내얼굴로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폭우 속의 장대비가 뿌리는 빗방울 처럼.

기억속의 밤하늘 같은

그 날의 그 밤하늘은 나에게 처음으로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우리 주변의 산에만 올라가도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인간세상이 발밑의 개미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는데 하물며 우주속의 지구, 지구속의 한국, 한국속의...... 그 무엇이든 어떤 의미라도 있으랴.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밤으로 부터 4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제주에 왔다.

우주의 관점에서는 찰나에 지날지라도 나에겐 청년에서 중년을 지나 노년의 입구까지 다다른 인생의 대부분인 시간 이다. 뒤돌아 생각하니 무엇이 그렇게 우리를 옥죄었는지 참으로 여유가 없는 시간 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여유가 없었고, 하늘을 보아도 그 곳에 무었이 있는지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그사이 여러번 제주를 다녀갔었고 그 밤하늘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예의 옥죄임 때문이었는지 항상 다른 절실함이 그것에 우선하였다. 한걸음, 아니 반걸음 이라도 뒤로 물러나 세상을 들여다 본다면 조금의 여유는 더 갖을 수 있었을텐데.... 더 아름다운 세상이 보일 수도 있었을텐데.

이제 잊고 있었던 스물두살때 본 그 밤하늘을 다시 찾아 보련다.

셀수 없다는 것 그리고 쏟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는 별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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