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3 아카시아 초등시절의 성북동엔 아직 나무 우거진 산이 남아 있었다. 어느 초여름의 토요일 방과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집에서 30분 거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야산 탐험에 나섰다. 도시의 아이들에겐 동네 부근의 낮으막한 산이라도 낯이 설었다. 해는 중천에 있고 날씨도 맑았지만 혹시 길을 잃어 날이 저물지도 모른다고 후레쉬를 챙겨온 아이도 있었다. 성북천 건너편 동네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니 집들이 듬성듬성해지고 빈터가 점차 많아졌다. 동네길이 산길로 바뀌고 나무도 많아져 우리는 점점 숲이 우거진 산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산 입구 안쪽으로 몇몇 무허가 판자집들이 있었는데 그곳을 지나니 주변이 적막해 지는 것이 우리가 탐험지역에 들어섰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처음 가보는 길에서 오는 얕으막한 긴장감을 오히려 즐기며 산길을 .. 2020. 9. 8. 춘식이-1 고등학교 입학하여 처음으로 내옆에 앉은 짝이 춘식이다. 170cm 정도였던 나보다 키가 몇센치쯤 컷으며 마른 편이었지만 뼈가 굵어 건장해 보이는 체격이었고 얼굴은 거무잡잡한 것이 남방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였는데 나에게는 그의 이름과 같이 '시골스런 분위기의 건강한 소년' 으로 그 첫인상이 남아있다. 서먹서먹한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고 춘식이는 자기가 종로의 조계사 부근에 있던 J중학교를 나왔으며 중학교 시절 밴드반를 했기 때문에 입학하자마자 밴드반에 가입하여 트럼본을 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며칠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밴드반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듯이 대화중에 끼워 넣고는 하였다.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드디어 그에게서 밴드반 입단 권유를 받았다. 틀림없이 지난 며칠은 이 .. 2020. 9. 6. 별밤 '별밤'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MBC 라디오의 음악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를 떠올릴 것이다. 그 다음엔 아마도 '돈 맥클린'의 자작곡으로 Starry Starry Night ~ 으로 시작하는 팝송 '빈센트'일 것이고. 그런데 나에겐 그것들 보다도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제주도 여행중에 무심코 마주하였던 밤하늘이 그것이다. 70년대의 이종환, 박원웅, 김기덕, 이수만, 그리고 80~90년대의 이문세를 거쳐 현재까지 50년 넘게 방송되고 있는 '별밤'은 그 시그널뮤직이 청소년시절의 나에겐 밤이 깊었음을 알려주는 시그널로 작용하였다. 밖에서 들으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귀가를 재촉하였고, 집에서 들을 땐 '집에 있어 다행이야' 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였었.. 2020. 9. 2. 학생 되다 세살 위의 작은 누나마저 학교에 들어가고나니 아침을 먹고난 오전시간이 갑자기 조용하게 다가왔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다 들릴 정도의 조용함 이었다. 물론 간간이 어머니의 설거지소리 청소나 빨래하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였지만 모두가 학교에 가고 혼자 집에 남은 나는 극심한 소외감을 느꼈다. 무리에서 따돌려진 외톨이의 느낌 이었고 그것은 일종의 두려움 이기도 하였다. 나도 빨리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어머니를 졸랐다. 아버지의 얼굴은 일요일에 낮잠을 주무시는 안방에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들어갔을 때 겨우 뵐 수 있었으므로 아버지께 직접 말씀드릴 계제는 아니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여덟살이 되어야 학교에 갈 수 있다며 그대신 누나들을 다그쳐 일종의 가내제작 학습지 같은 것을 만들게 하셨다. 감히 어머니에게 저항.. 2020. 8. 21.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