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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

소보로

by 센티멘탈 쟈니 2020. 7. 24.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신다.

여덟 식구의 아침식사와 네 개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기에 엄마는 눈을 뜨자마자 바쁘게 움직이신다. 고등학생, 중학생, 국민학생인 형들과 누나들, 그리고 아버지에게 집에서 나서는 순서대로 아침상을 준비해 주시고는 학교가는 형들과 큰 누나에게 도시락을 하나씩 들려 주셨다. 세명의 형과 두명의 누나가 등교하고 아버지도 출근 하시고 나면 집안이 갑자기 조용해 진다.


엄마와 나, 평화롭게 아침식사를 한다.

엄마는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의 고요함을 조용한 식사를 하면서 즐기시는 것 같다. 식구들이 저질러(?) 놓은 일거리가 쌓여 있고 그 것들을 곧바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여유를 누리시는 듯 하다. 내가 밥을 다 먹고도 엄마는 한참을 더 드신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의 한 시간쯤은 드시는 것 같다.


나에겐 지루한 시간 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엄마는 다시 바쁘다. 설겆이와 빨래 그리고 청소....  작은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왔고 엄마는 간단한 점심을 준비해 주셨다. 점심후에 누나는 친구 찾아 놀러 나가고 엄마는 하시던 일로 돌아가 계속 하신다. 동네에 또래가 많지 않았던 나는 혼자 집에서 뒹굴거리다 혹시 누가 나왔을까 골목 밖을 기웃거리기를 반복한다.  


늦은 오후에 엄마는 집을 나선다.

큰 누나와 형들이 차례로 돌아오기 시작할 시간이면 엄마는 저녁 찬거리 준비를 위해 시장엘 간다. 가끔은 나에게 따라갈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기도 하여서 엄마 손을 잡고 시장 구경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시장은 삼선교 시장 이었는데 성북천을 따라서 아래 쪽으로 내려가다가 전차길이 있는 대로를 건너면 시장 입구가 나왔다. 

 

 

나는 시장이 싫었다.

시장길은 입구에서 부터 질척이기 시작했고 안으로 갈수록 더 심해졌다. 생선가게에서 풍기는 비린내가 싫었고 닭집에서 들리는 푸덕이는 날개짓 소리와 특히 목을 비트는 모습을 보았을 때 싫었다. 길가로 튀어나온 좌판들이 길을 좁게 만들어 사람들이 부딪히며 다니는 복잡함이 싫었고 그 사이를 때릉거리며 비집고 다니는 자전거가 싫었다. 그리고 시장에서 엄마 손을 놓쳐서 미아가 된 아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싫었다. 


그래도 따라가는 이유가 있다.

시장에는 장난감 가게가 있었는데 문방구에서 파는 딱지, 팽이, 구슬, 조잡한 인형 따위와는 다른 진짜 장난감들을 거기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엄마가 그런 것을 사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섯살의 어린 나이 였지만 우리집은 그럴 형편이 안된다고 이해하는 조숙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장난감의 세계를 기억으로 담아와서 잠자리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리플레이 하는 행복은 내마음 대로 이었기 때문 이다.   


빈 손으로 오지는 않는다.

장을 보고 돌아 오는 길에 자주 들르는 과자집이 있다. 엄마는 이 곳에서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센베이 과자를 사신다. 넓은 변 쪽에 김가루가 섞여 들어간 삼각형 모양, 쪼개진 땅콩이 듬성듬성 박혀있는 동그라미 모양, 그리고 생강 맛의 흰 가루로 덮혀진 말이 모양의 센베이를 골고루 한봉지 크게 담아도 무겁지 않다. 양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식구가 많은 우리집에 적당한 간식 이었던 것 같다. 

 

 

소보로

과자집에서는 팥, 크림, 소보로등 몇가지 빵도 같이 만들어 팔았는데 그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한 것은 소보로 빵 이었다. 거북이 등딱지 처럼 붙어서 빵이라기엔 딱딱하고 과자라기엔 부드러운 껍질의 단 맛이 좋았고, 안쪽으로 공기를 듬뿍 품은 공갈빵 같지만 물렁하면서 쫀득한 빵 안쪽의 식감도 좋았다. 특히 갓 구워진 따끈한 소보로는....    
센베이 과자를 사는 날이면 엄마는 늘 내손에 소보로 한 개를 쥐어 주셨다. 

그 소보로의 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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