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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성북동(1958~1969)

by 센티멘탈 쟈니 2020. 7. 15.

삼선교에서 지금은 복개된 성북천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좌측으로 파출소가 있다. 파출소를 예각으로 끼고 돌아 몇 집 거리쯤을 가면 작은 사거리가 나온다. 삼선교 큰길에서 오는 소로가 좌측에 있고 경신중고등학교 쪽으로 연결되는 언덕길이 우측에 있다. 우리집은 그 언덕길 따라 중간쯤 오르다 왼 쪽으로 난 골목 안에 있다. 물론 지금은 남의 집 이지만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유년기를 보낸 우리집 이다. 

경신중고등학교로 가는 언덕길. 집들이 좀 높아졌을 뿐 내 기억속의 1960년대와 별 차이가 없다

기역자로 꺽이는 골목의 꺽인 정면에 우리집 대문이 있다. 우리집 대문을 앞에서 바라다보면서 오른쪽 꺽인 모서리 위치에 대문을 내고 그 안 쪽으로 또 하나의 대문을 가진 경희네가 우측에 있었다. 경희네 대문 옆으로는 쌍둥이네의 한옥식 대문이 우리집과 직각으로 위치해 있었다. 왼 쪽에는 우리 집과 담장이 연결된 남이네가 아담했던 우리집의 두 배쯤의 크기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두어집 건너서 골목의 끝에 명호 할머니네가 있었다.

우리집은 성북동 언덕에 새로 택지가 조성될 때 어머니가 한 필지를 불하받아 지었다고 한다. 남달리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가 고지식한 아버지의 월급봉투 만으로 어렵게 어렵게 이루어낸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55년 생인 작은 누나를 이 집에 입주하여 낳았다고 하니 아마도 그 해에 입주하였을 것이다. 

아직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골목, 좌측부터 남이네, 우리집, 경희네

우리집은 양옥집의 겉모습에 내부는 일본식이 가미된 구조였다. 대문을 열면 바로 현관문이 보이고 현관 안쪽엔 신을 벗고 올라서는 마루가 있다. 마루에 올라서면 앞엔 짧은 복도가 오른쪽 옆으론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과 화장실이 있다. 복도 끝 안쪽엔 부엌문이 바로 보이고, 우측엔 골방문, 좌측엔 마루거실 이다. 거실쪽으로 돌아서면 마루 건너 전면에 유리창 미닫이 문과 그 유리창 넘어 작은 정원이 보인다.

거실의 오른 편은 안방 그리고 왼편은 건넌방의 미닫이 문이 있다. 2층에는 대문쪽으로 골목을 향한 창문이 있는 침대 방, 가운데는 책상이 있는 서재 방, 그리고 반대 편엔 다다미가 깔려 있는 방으로 세개의 공간이 있다. 목조 바닥으로 된 위 층에는 난방이 안되어 겨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1969년 국민학교 5학년 가을에 마포구 합정동으로 이사할 때까지 이 집에 살았다.

기억을 더듬어 둘러본 우리동네

우리집 앞쪽의 언덕 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경신중고등학교가 있는데 당시에는 담장이 없어서 운동장이 휑하니 노출 되어 있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나오면 보성중고등학교가 나오고 학교 담장을 끼고 길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보성학교 정문과 이어서 작은 로타리식 삼거리가 나왔다. 현재의 서울과학고 위치가 옛 보성학교 자리 이다.

길을 따라 더 내려오면 좌측에 혜화국민학교가 있고 계속 진행하면 혜화동 로타리가 나온다. 곧바로 가면 서울 문리대(지금의 대학로) 쪽이고 오른쪽이 명륜동 이다. 왼쪽으로는 얕게 뻗은 오르막 길인데 이리로 가다보면 높은 축대길이 나오며 그 축대길 중간쯤에 만들어진 동굴이 있었는데 거기에 석굴암이라고 이름을 붙인 선술집이 있었다. 대략 현재 혜화문이 복원된 위치쯤 이었던 것 같다. 석굴암을 지나 더 가면 다시 삼선교가 나온다. 

여기까지가 초등 저학년 때까지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던 나의 나와바리 였다고 볼 수 있다. 학년이 올라가며 한쪽으로는 미아리고개 다른 쪽으로는 창경궁 까지 그 범위가 넓혀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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